샤를 미셸
최근 수정 시각: (5년 전)
이름 | Charles Yves Jean Ghislaine Michel 샤를 이브 장 길렌 미셸 |
출생 | |
국적 | |
학력 | |
정당 | |
직업 | 정치인, 변호사 |
경력 | 혁신개발부 장관 (2007 - 2011) 개혁운동 대표 벨기에 제51대 총리 (2014 - 2019) |
신체 | 185cm |
임기 | 2014년 10월 11일 – 2019년 10월 27일 |
SNS | |
1. 개요 [편집]
2. 약력 [편집]
1975년 왈롱의 나뮈르에서 태어났다. 1992년 16세의 나이로 청년 자유당에 들어가 정치 활동을 시작했으며, 1994년 18세의 나이로 브라방왈롱 주 의원에 선출되었다. 프랑스어 브뤼셀 자유 대학교(Université libre de Bruxelles)[3]와 암스테르담 대학을 졸업하고 난 뒤 변호사가 되었고 1999년에는 벨기에 연방 하원으로 정계에 진출하였다. 이렇듯 커리어가 꽤 빠른 편이었다.
2000년 왈롱 내각의 외무장관을 맡았으며, 2006년에 우아브르 시장이 되었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세 총리 밑에서 개발협동조합 장관으로 일했다. 2010년 개혁운동 당수인 디디에 레인더스(Didier Reynders)가 6월 연방 선거에서 패배하고 당수에서 물러난 뒤 2011년 1월 개혁운동 당수로 선츨되었다. 그리고 2014년 10월 11일 연방 선거에서 총리에 당선되었다. 왈롱권에서 총리 임명 관련 논란이 많았다. ‘사회주의자만 연정에서 빠진다면 모든 조건을 받아 들이겠다’. 결국 현재 연방에서 좀더 느슨한 'confédéralisme[4][5]'으로 가자는 얘기가 나오고 있고, 그렇게 법령이 바뀌어도 막을 수 있는 조치가 없게 되었다.
당선 당시에는 네덜란드어권의 제1당으로 우파 성향인 신플람스 연맹(N-VA)과 기독민주당(CD&V), 열린 플람스 자민당(Open VLD), 그리고 미셸 총리의 개혁운동(MR) 등 4개 정당이 주축이 된 연립정부가 출범했다. 하지만 유럽 난민 사태가 터지면서 덩달아 벨기에 정계에 몰아치면서 반(反)난민 정책을 주장하는 N-VA는 연방의회가 '유엔 국제이주협약' 서명 동의안을 가결처리하는 것으로 미셸 총리에게 힘을 실어주자 이에 반발해 소속 장관들을 사퇴시켰다.
연정 체제가 무너진 뒤 여소야대 정부를 이끌게 된 미셸 총리는 조기 총선 가능성을 일축한 채 소수 좌파 진영의 지지를 끌어들여 내년 5월 총선 때까지 집권하고자 했으나 유엔 이주 글로벌 콤팩트 문제를 놓고 야권인 사회민주당과 녹색당 의원들이 공동으로 자신에 대한 불신임 투표안을 제출하자 필리프 국왕에게 사의를 표명했다.
그 후, 필리프 국왕은 사의를 표명한 샤를 미셸 총리에게 내년 5월 차기 총선 때까지 내각을 계속 이끌어 줄 것을 당부했다. 사의를 받아들이면서 임시 총리로 이끈다.
유럽의회, 지방선거, 총선 결과로 현재의 유럽정치상황처럼 플람스의 이익, 벨기에 노동당이 대약진하였으며, 소속되어있는 개혁운동은 패하게 된다.
2019년 도날드 투스크의 후임으로 유럽 연합 정상회의 상임의장직(President of the European Council)에 내정되었다. 12월 1일부터 임기를 시작한다.
따라서 10월 말에 임시 총리 자리를 소피 윌메스에게 주고 사임하였다.
2000년 왈롱 내각의 외무장관을 맡았으며, 2006년에 우아브르 시장이 되었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세 총리 밑에서 개발협동조합 장관으로 일했다. 2010년 개혁운동 당수인 디디에 레인더스(Didier Reynders)가 6월 연방 선거에서 패배하고 당수에서 물러난 뒤 2011년 1월 개혁운동 당수로 선츨되었다. 그리고 2014년 10월 11일 연방 선거에서 총리에 당선되었다. 왈롱권에서 총리 임명 관련 논란이 많았다. ‘사회주의자만 연정에서 빠진다면 모든 조건을 받아 들이겠다’. 결국 현재 연방에서 좀더 느슨한 'confédéralisme[4][5]'으로 가자는 얘기가 나오고 있고, 그렇게 법령이 바뀌어도 막을 수 있는 조치가 없게 되었다.
당선 당시에는 네덜란드어권의 제1당으로 우파 성향인 신플람스 연맹(N-VA)과 기독민주당(CD&V), 열린 플람스 자민당(Open VLD), 그리고 미셸 총리의 개혁운동(MR) 등 4개 정당이 주축이 된 연립정부가 출범했다. 하지만 유럽 난민 사태가 터지면서 덩달아 벨기에 정계에 몰아치면서 반(反)난민 정책을 주장하는 N-VA는 연방의회가 '유엔 국제이주협약' 서명 동의안을 가결처리하는 것으로 미셸 총리에게 힘을 실어주자 이에 반발해 소속 장관들을 사퇴시켰다.
연정 체제가 무너진 뒤 여소야대 정부를 이끌게 된 미셸 총리는 조기 총선 가능성을 일축한 채 소수 좌파 진영의 지지를 끌어들여 내년 5월 총선 때까지 집권하고자 했으나 유엔 이주 글로벌 콤팩트 문제를 놓고 야권인 사회민주당과 녹색당 의원들이 공동으로 자신에 대한 불신임 투표안을 제출하자 필리프 국왕에게 사의를 표명했다.
그 후, 필리프 국왕은 사의를 표명한 샤를 미셸 총리에게 내년 5월 차기 총선 때까지 내각을 계속 이끌어 줄 것을 당부했다. 사의를 받아들이면서 임시 총리로 이끈다.
유럽의회, 지방선거, 총선 결과로 현재의 유럽정치상황처럼 플람스의 이익, 벨기에 노동당이 대약진하였으며, 소속되어있는 개혁운동은 패하게 된다.
2019년 도날드 투스크의 후임으로 유럽 연합 정상회의 상임의장직(President of the European Council)에 내정되었다. 12월 1일부터 임기를 시작한다.
따라서 10월 말에 임시 총리 자리를 소피 윌메스에게 주고 사임하였다.
3. 기타 [편집]
- 총리직에 취임할 당시 1845년 이래 벨기에 최연소 총리라는 기록을 세웠으며, 총리 재임 기간은 1,842일로 역대 벨기에 총리 중에서 14번째로 길다.
- 아버지인 루이 미셸, 동생인 마티외 미셸 모두 대머리인 것으로 보아 대머리 유전자를 가진 듯 하다.
[1] 석사와 박사 사이의 학위.[2] 석사와 박사 사이의 학위.[3] 프랑스어권 브뤼셀 자유대학은 ULB(Université libre de Bruxelles), 네덜란드어권 브뤼셀 자유대학은 VUB(Vrije Universiteit Brussel)이다. 두 대학은 서로 별개이다. 본래 한 대학이었으나 1969년 언어별로 분리된 것이라 캠퍼스는 하나의 블럭을 반으로 나눠 쓴다.[4] 연방정부의 권한을 대폭 축소하고 자치권을 보다 강화한 정치형태이다. N-VA가 강하게 주장하고 있으며 왈롱 쪽에서는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5] 네덜란드어[6] 플람스의 이익 이전에는 인종차별 정당으로 찍혀 해산했던 Vlaams Blok 소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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